근세의 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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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의 위인

29세 함안공(咸安公) 휘 청열(淸烈) (1847-1940, 도촌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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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종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9-23 00:54 조회4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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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휘는 청열(淸烈)이요 자는 분가(分可)이고 호는 소주(小洲)이며 조선조 헌종13년(1847) 12월5일에 만경공(萬頃公) 휘 종필(種馝)의 맏아들로 태어나셨으니 창주공(滄洲公) 휘 성길의 10대손이며 도촌공 휘 교(嶠)의 20대손이 되신다. 고종 8년(1871)에 음관(蔭官) 별군직(別軍職)이 되고 고종 십년 친시무과에 급제하여 내무부장훈련주부(內莁部將訓鍊主簿 ) 判官 판관(僉正) 무위영초관(武衛營哨官) 종사관 선전관 호조좌랑 중추부 첨지겸 사복장(司僕將) 우림위장(羽林衛將) 내금위장 중추원의관 등을 역임하시고 고종 13년에 함안군수로 외보(外補)되어 흉년이 들어 사재를 털어 기민(飢民)을 구제 하셨는데 감사 박제인과 암행어사 이정래가 그 구휼(救恤)의 선정을 칭찬하고 장려하는 글을 조정에 올려 상을 받았다. 고종 15년에 옥구현감으로 전보되어 구형장군으로 특징되였고 고종 19년에 청산진첨사가 되어 선정을 펴서 고을이 크게 다스려 졌으니 그 공으로 만인산(滿人傘)을 받으셨고 덕을 기리는 거사비(去思碑)가 있다. 고종 29년에는 방어사에 특수(特授)되고 고종 31년에는 선유사(宣諭使)가 되어 관동의 여러 지방에서 일어난 동학교도를 상대로 하여 나라에 미치는 득실을 타일러 물러갈 것을 선유하니 반도 8천명이 감읍하여 귀하 함으로 진압되었다. 광무 원년(1897)에 중추원의관이 되어 명을 받들어 나라를 지키는 여러 가지 계책인 육책을 당시 궁내부대신 민영기를 통해서 조정에 전달되었으며, 순종 4년(1910) 일본 침략으로 나라가 망하자 관직을 버리고 포천땅 호병골에 돌아가 서당을 세우고 대학자로서 구국의 인재양성에 헌신하니 문학에 훌륭한 인물을 많이 배출하였다. 많은 저서를 남기셨고 성균관에도 업적을 남기셨다. 그런데 저서는 6.25동란으로 인하여 소실되어 오늘에 전하지 못하니 애석하도다. 공은 노새에게 절을 한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왜정때에 기르는 노새가 주인을 보기만하면 반가워하는 것을 보고 “너는 주인을 알아보는데 나는 주인을 잃었구나.”라고 하며 나라 잃은 서러움을 한탄하면서 노새에게 큰절을 하셨다는 일화가 있다.
1940년 11월 16일에 졸하니 향년 9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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