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의 위인

일가 여러분의 가정 가정마다 웃음소리가 창밖까지 번지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근세의 위인

29세 호군공파 - 추호공秋湖公 이경李京의 생애

페이지 정보

작성자 대종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9-22 23:26 조회442회 댓글0건

본문

공은 휘諱가 경京이요 호號는 추호秋湖이며 본명은 자열滋烈이고 파조派祖이신 호군공護軍公 휘諱 곡谷의 17세 후예後裔이다. 공은 1911년 11월 14일(辛亥)에 나주羅州시 다시多侍면 영동永洞리 흑암黑岩 마을에서 동춘東春의 독자獨子로 출생하였으나 백부 동길東吉이 손이 없어 백부에게 출계出系하였다.
 
2041294359_1411396452.07.gif

추호공 이경

 
가세가 빈한한데다 8세에 엄친嚴親을 잃어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에도 배워야한다는 굳은 신념으로 독학의 길을 걸으며 지식과 견문을 넓히고 역량을 키우다가 뜻한바 있어 경찰警察계에 투신하였다. 영암靈岩, 해남海南, 광양光陽 경찰서장을 역임한 후 충청남도忠淸南道와 전라북도全羅北道의 도경비사령부의 참모장과 보안과장을 거치며 광복으로부터 6.25동란에 이르는 혼란한 시기에 민생치안과 사회질서확립에 혁혁한 공적을 남겼다. 또한 공은 심신의 단련과 수양을 위해 유도柔道를 시작하여 6단의 사범이 되었고 유도를 건전한 스포츠로 정립하고 경찰계와 전남도에 보급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2041294359_1411396475.52.gif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趙炳玉 박사(뒷줄 왼쪽에서 세 번 째)와 함께

 

공은 화려한 경찰계의 경력을 마감한 후 염산염업사鹽山鹽業社를 창립하여 실업가로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 후 낙향落鄕하여 향리鄕里를 위한 농촌의 계몽啓蒙과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특히 자신처럼 가정이 빈한하여 정규 중∙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어린 인재들이 많음을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하여 이들의 육영育英을 위하여 다시면에 다문중학교多文中學校를 신설하고 초대 교장의 중책을 맡아 학교의 기초를 다지고 학생들을 교육하는데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다. 오늘까지 다문중학교가 이 지역 발전에 동력動力이 되는 유능한 인재들을 양성해 왔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바 이는 실로 공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041294359_1411396491.71.gif

자유당 정권 때 윤보선尹潽善 전 대통령과 반 독제 투쟁에 나선 추호공

 
공은 강직하고 소탈한 성품을 지녔고 항상 이상理想을 품고 이를 실현하는데 앞장서서 활동하였다. 공은 자유당自由黨 정권이 독재화의 길을 걷자 분연奮然히 정계에 투신하여 민주당民主黨 나주을구羅州乙區의 위원장으로서 민주화 투쟁에 온 몸을 바쳤고 나주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어 1960년 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국리민복國利民福과 국가발전國家發展을 위하여 진력하였다. 공은 1984년(甲子) 5월 25일 노환으로 향수 73세에 타계하였다. 공은 1963년 봄 여러 종친들과 함께 호군공파재경종친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에 취임하여 호군공파의 발전과 친목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2041294359_1411396507.65.gif

국회에서 연설하는 추호공

 
공은 슬하에 기화基和, 종수宗洙, 종준宗駿 등 3남 4녀를 두었다. 장남 기화는 서울대학교 자연과학교수로 재직 중 대한지구물리학회大韓地球物理學會를 창립하여 초대 회장과 명예회장을 역임했고 정년퇴임한 후에는 한국지구물리학회.탐사물리학회의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었다. 2013년 3월에는 국내지구물리학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와 지진학地震學분야의 독보적인 연구업적으로 유서 깊은 3.1문화상文化賞 학술상(자연과학분야)을 수상하였다. 또한 2006년부터 법보신문法寶新聞 논설위원으로서 칼럼을 써오고 있으며 그 해 출간한 번역서 『운명을 바꾸는 법』(불광출판부)은 불교출판계의 스테디셀러가 되어있다. 나주시 다시면민들은 공이 지역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지대한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2004년 호군공을 모신 文洞리 선영 앞길에 다시면에서 최초로 공적비功績碑를 건립하였다. 공적비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다. “공은 타계하셨지만 그 강직하고 인정 많은 인품과 빈한한 농민의 아들로서 생전에 이루신 경찰치안의 공적과 지방인재의 교육 그리고 민주화운동의 선봉에서 활약하신 높으신 정신과 공덕은 잊을 수가 없다. 이에 공을 흠모하는 이들이 뜻을 모아 이곳에 공적비를 세우니 지나는 사람마다 세속世俗의 급류急流를 잠시 벗어나 옷깃을 여미고 참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기를 바랍니다.” (2014년 8월 25일 고성이씨대종회 이사 30세 기양基羊 삼가 씀)
 
2041294359_1411396524.29.gif

전남 나주시 다시면 문동리 호군공 선영 앞길에 있는 추호공 공적비

 

[이 게시물은 대종회님에 의해 2014-09-23 00:40:05 근세의 위인에서 복사 됨]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