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의 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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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세 애국지사 수산공(水山公) 휘 泰植 (1875~1951, 은암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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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종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9-23 00:37 조회368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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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휘는 태식(泰植)이요, 字는 자강(子剛)이며 수산은 號이다. 은암공의 18대손으로 1875년 4월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오방리에서 출생하여 손수 건립한 임청정에서 1951년 졸하니 향년 77세였다.
공은 타고난 용모가 준수하고 기상이 남달랐다. 그러나 당시 문중에서는 뛰어난 문인달사는 죄다 요절하는 불운이 있었으니 학문을 기피하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서도 수산은 배우고자 하는 뜻이 있어 홀로 글을 부지런히 익혔다고 한다. 족숙 자동공의 문집간행을 기화로 면우 곽종석을 배알하고 스승으로 섬겼을 뿐 아니라 지역의 석학들을 두루 찾아 배움을 청하였다.
특히 수산공은 을사 늑약 때에 침묵하던 스승 면우에게 편지를 보내 의병을 일으킬 것을 청하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에 침묵하던 면우 곽종석은 드디어 피라장서사건을 주도한다. 거국적인 3.1독립선언서 작성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에 이른바 유학자들이 빠지게 된 것을 실로 통탄하여 파리강화회의에 민족 독립을 요구하는 장서를 보내게 되는데 수산공은 유림대표 자격으로 서명하게 된다.
그리고 의열단원을 동원하여 군자금을 모으려고 한 제2차 유림단사건이 있었는데 공은 여기에도 참여하여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일제의 탄압을 받게 된다. 이러한 공의 행적이야 말로 실로 왜란 당시에 선조이신 송암공과 백암공이 창의하고, 호란을 맞아 가재를 털어 의려를 꾸민 바 있던 괴당공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정부에서는 2004년 수산공에게 애족장을 추서하여 유훈을 기리고 있다.

댓글목록

물안개님의 댓글

물안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독립운동가이며 유학자이신 수산 이태식(1875~1952)선생  입니다
근세의 위인이 아니라 독립운동가 입니다
고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