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의 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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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세 호군공파 - 농와공農窩公 이동연李東連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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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종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9-22 22:47 조회4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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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가 세상에 태어나 묘당위업廟堂偉業을 수렴치 못하고 초야草野에 묻혀 선조의 위업을 숭상하고 후손에 효우가풍孝友家風을 전수하고 몸소 실천한 분이 농와공이다. 공의 휘諱는 동연東連, 자字는 계수桂秀, 호는 농와農窩이다. 농와공은 시조 철영군鐵嶺君 휘 황璜의 28세손이며, 고려말 문정공文貞公 행촌杏村 휘 암嵒의 19세손이요, 세종조 좌의정 용헌공容軒公 휘 원原의 17세손이며, 호군공護軍公 휘 곡谷의 16세손이고, 전라감사 감사공監司公 휘 절節의 15세손이다.
 
공은 부친 증공조판서贈工曹判書 경원慶源과 모친 금성오씨錦城吳氏 사이에 어려운 빈농집인 전라도 나주 초동에서 1873년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솔선수범하는 기질과 재능이 있었다. 부친을 일찍 여의고 모친과 연로하신 조부를 효도하며 지극정성으로 모시었다. 학업은 이웃 마을 서당書堂의 덕망 높은 난와難窩 오계수吳繼洙 선생의 문하에서 사학史學과 서예書藝, 보학譜學 등을 배워 통달하였다. 특히 사례편람四禮便覽은 전부 암송할 정도로 능숙하였다. 관혼상제나 예법을 잘 알기에 모든 행사에 몸소 실천하니 칭송이 자자하고 원근 마을에서 모범 가정으로 추앙하고 그대로 배워 실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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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하면서 공의 근면성실한 성품대로 하천부지나, 야산 등을 손수 개간하여 전 답을 늘려가고 논과 산을 매 입하여 전답田畓이 수천 평으 로 늘어 가정이  윤택하고 재 산이 계속 늘어 운봉리 칠봉 촌에 기와집으로 안채, 사당, 사랑채, 행랑채 4동을 건축하 였다. (사진-농와공-저택 참 조) 모든 목공구와 농기구도 갖추어 놓았기에 집에서 직접 기와도 구어 만들고 목수와 똑같이 목공일을 하며 집을 지었다.
 
가사 일은 자립자족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목화, 모시, 삼배, 명주를 자작하여 여자들에게 옷을 지어 입도록 하였으며, 남는 것은 장날 내다팔아 가용에 사용하도록 하였다. 또한 대나무도 기르면서 죽기竹器를 손수 만들어 사용토록 하고 이웃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남들도 도우며 자신의 농사일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명년明年 1년 동안 일할 품삯을 금년 추수한 쌀로 35~6명에게 금년에 선 지급하여 생활에 도움이 되게 하였다. 그러하니 어렵게 사는 이웃들이 앞 다투어 신청을 하였다.
공의 성품은 강직하고 인자하여 불의에는 정의로 대처하고 어려운 이웃에게는 온정을 베풀어 전답을 빌려주어 생활에 보탬이 되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걸인들은 대접을 잘한다는 소문이 나서 거지들이 자주 오는데 공은 항상 가족이 먹는 것과 똑같이 상을 차려 대접하였다. 그래서 대소사나 제사 때는 많은 걸인들이 잊지 않고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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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사업爲先事業으로는 문중門中과 종사宗事에 솔선하여 문중 제실인 적산재 積 山齋(사진-농와공-적산재 참 조), 영정재靈井齋 등 10여 동 의 제실과 10여 대代 선조묘先 祖墓의 석물石物을 본인 개인 재산으로 전부 건립하였다. 나 아가 외조묘外祖墓의 석물까지 건립하였다. 문중 논도 종토宗 土로 마련하기 위해서 동분서주 하며 마련하는데 앞장섰다.
 
농와공은 4촌 형제 8명이 벼를 추렴하여 (본인은 더 많이 내놓고) 존양계尊兩契를 결성하여 조부 형제와 증조부 형제 4분을 봉양하고 효도하도록, 계책契冊을 작성하여 기록하면서 유지시켰다. 2014년 현재 후손들이 시제의 형태로 잘 모시고 있다. 농와공은 종사일이 난관에 부딪치면 소송하여 변호사도 없이 자신이 직접 변론, 진술하여 승소하고 패소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으니, 대소 종사 일을 앞장서서 해결하는 능력을 지닌 희대의 인물이었다.
 
공은 교육 사업으로 자택에 서당을 차려 놓고 명사를 초빙하여 자손들과 원근遠近 친척들 자제 및 이웃 마을 아동들을 공부하도록 적극 지원하였다. 자신은 사랑채에 선비와 유객들을 유치하여 원하면 3개월 이상까지도 숙식을 제공하면서 시조와 풍월을 읊으며 교류하니 전라도의 선비들이 오가며 농와공의 선행과 희생정신, 그리고 가족들의 품행과 절약정신을 칭송하고 소문을 내어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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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와공은 슬하에 2남3녀를 두었으며, 후손들에게는 정도를 걷게 하고, 자립정신과 근면성실의 생활 태도를 가르쳤으며, 항상 “(1) 무엇이든지 배우고,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라 (2) 책 속에 길이 있고 일속에 행복이 있다”고 말했다. 공은 평생 재산도 풍족하고 가정도 화목하도록 이끌었다. 이웃을 도우며 종사宗事에 앞장서서 솔선수범하여 타의 모범이 되면서 후회없이 사시다 1944년 향년 72세로 서거하니 친족들과 수많은 지인들의 명복과 애도 속에 전남 나주시 다시면 운봉리 거사동 선산에 모시어 졌다. 그리고 1987년 10월 고성이씨호군공파종중 에 서는 종원들의 정성어린 뜻을 모아 공 의 공적을 기리는 추모비를 적산재 앞 뜰에 건립하였다. (사진-농와공-추모 비 참조)
 
농와공農窩公 어록語錄
 
1. 부단히 배우는 자가 유능한 인물이 될 수 있고 또한 유능한 인물이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다.
2. 부지런하게 일하면 행복을 누릴 수 있고 무위無爲와 나태한 자는 절대로 복이 없다.
3. 흘러가지 않는 물은 썩기 쉽고 구 슬도 닦아야만 광채가 난다.
4. 책 속에 길이 있고 일 속에 행복이 있다.
5. 의義로 살고 의義에 죽는다.
의義자는 양羊자 밑에 아我자로 된 글자이다. 양이라는 동물은 천진난만 하여 거짓을 모르는 순수하고 선량한 동물이다. 그러므로 의義란 바르고 허위가 없는 것.
6. 우리는 뭔가 보람 있는 유산을 남기고 가야한다.
크고 작은 정신적이건 물질적이건 보람 있는 유산을 남기기 위하여 꾸준히 이마 에 땀을 흘리면서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014년 8월 25일 / 고성이씨호군공파종중 회장 31세 금옥錦玉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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