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出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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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出家)

9世 | 운암대선사(雲菴大禪師) 휘 징(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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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종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3-19 22:07 조회4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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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이씨 문중은 6세 문산공(文山公) 휘 진(瑨) 때에 중앙 과거에 입사(入仕)의 길을 여시고 7세 문희공 휘 존비(尊庇)께서 명문대가의 입지 기반을 닦으시고 9세 행•·도촌공 형제분 시대에 꽃을  피우기 시작한 그 시기에 대선사는 8세 문헌공(文憲公) 휘 우(瑀)의 3남 4녀중 3남으로써 과거에 급제하시어 밀직사사의 높은 관직에 봉직할 때 백형 행촌공, 중형 도촌공 양 형의 보살핌을 받아 승승장구할 수 있는 여건을 버리고 가족(배위 진주 柳氏)과 이별하시고 왕사이신 숙부 각엄존자의 門下에 입산수도하였고 또 고종사촌(문희공 2녀 유연수의 아들)인 연온(衍溫)도 왕사이신 외삼촌의 문도가 되었다.

  이렇게 친인척이 출가수행자가 많은 것은 가문에서 권장할 수도 있지만 시대상으로 보아 왕사의 위상이 대단하였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公의 초휘(初諱)는 군보(君保)이시고 휘는 징(澄), 호 매촌(梅村) 이었으나 출가하시여 법명(法名) 청수 (淸叟), 법호(法號) 운암대사(雲菴大師) 이시다. 그리고 각진국사의 뛰어난 문인 계보에 의하면 대사의 휘가 보이지 않는 것은 사판승(事判僧, 절의 재물과 사무를 맡아보는 스님)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정토사(백양사)의 주지로써 큰 스님의 법을 잘 계승하셨다.

  공민왕 20년(1370) 여름에 폭우로 백양사쌍계루 누각이 무너진 것을 운암선사께서 중창하신 뒤 1377년에 삼봉 정도전이 쌍계루 교루기문(橋樓記文)을 쓰신 내용이 대사의 유일한 유적으로 이 기문에 잘 나타나고 있다.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삼봉 정도전, 그리고 상국(相國) 유명인사의 시문편액(詩文扁額)이 현재 누각내에 일부 복원되어 있어서 그 당시 쌍계루 위상(位相)을 뒷받침해 주고, 불갑사에 소장하고 있는 필사본 쌍계루 시축(詩軸)은 쌍계루에 대한 중요한 사료로서 운암선사의 활동이 많이 나타나 있다.

  사암공파 31세 이호(利鎬) 종친이 2001년 10윌 백양사 경내 쌍계루앞 부도군(浮圖群) 내에 覺眞國師碑와 雲菴大師 기적비(記蹟碑)를 자력으로 각수(刻竪) 함으로써 백양사에 대한 유적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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