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세덕

일가 여러분의 가정 가정마다 웃음소리가 창밖까지 번지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선조세덕

13世 | 병조참판(兵曹叅判) 휘 의(嶷, 1428〜1491, 鈍齋公派) 의 생애와 행적

페이지 정보

작성자 대종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3-06 10:53 조회452회 댓글0건

본문

휘는 의(嶷)요 자는 사첨(士瞻)이시며 둔재공의 4남 3녀 중 3자로 1428년에 태어나셨다.
19세에 생원이 되시고 20세에 문과 을과(文科 乙科) 7명 선발에 올라 각조(各曹)를 거쳐 병조참판(兵曹叅判)을 지내셨다. 1491년 2월 19일 64세를 1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자녀는 4남 4녀인데 장남 필(珌)은 좌승지(左承旨)를 거쳐 예조참판(禮曹叅判)을 역임하셨고 후손은 성주와 김포에 살았으며, 2남 완(琓)은 무안 현감이었고 후손은 광주(光州), 무안, 함평 등지에 거주하고, 3남 탁(琢)은 부정(副正) 이었고 후손은 대전, 북한 등지에 살고 있었으며 4남 민(珉)은 무후이다.
묘는 성남시 도촌동 선영 외청용등(外靑龍嶝) 유좌(酉坐)에 계셨으나 분당 신도시 개발로 1990년 8월 6일에 성주군 초전면 용성리 후산 자좌에 이장하여 배위 정부인(貞夫人) 성주이씨(星州李氏)와 합폄하였다.
묘전비는 벽진 이우극(李愚極) 공이 글을 지었고 동래 정순권(鄭淳權)공이 글을 썼으며,
 
《성암의 할아버지요 용헌의 손자이라,
아름다운 의적(懿)은 병화(兵火)를 겪어
기송(杞宋)처럼 증거없으니 감히 덧붙이리요.
당시를 회상하면 세월이 반 천년이 되었네.
수많은 자손들은 음덕이 면면(綿綿)함이라.
오직 이 정민(貞珉, 묘갈)은 영원히 보존되리라》
《省庵之祖襄憲之孫 彬彬懿蹟酷被兵燹 杞宋無徵敢何贅焉
回億當時歲遠半千 不億雲仍餘蔭綿綿 惟此貞珉庶幾永存》
는 묘갈명이 세겨져 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