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세덕

일가 여러분의 가정 가정마다 웃음소리가 창밖까지 번지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선조세덕

10世 | 충정공(忠靖公) 휘 희필(希泌)(? -1377) (도촌공파)

페이지 정보

작성자 대종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3-19 21:19 조회357회 댓글0건

본문

도촌공의 둘째 아드님이시며 시중공 휘 림의 아우로서 처음 휘는 돈(沌) 이시다. 관작은 삼중대광 삼사좌사(三重大匡 三可左使)와 정원공신(定原功臣)으로 固城君에 봉해젔으며 우왕 3년(1377) 12월에 돌아가시니 시호는 충정(忠靖)이라 하였다. 고려사에 의하면 판개성부사(判開城府使)로 있을 공민왕 14년경 왕을 유혹하여 온갖 술수로 국정을 혼란케 함이 극치에 도달한 왕 16년(1376) 지도첨의 오인택(吳仁澤) 등과 함께 신돈을 살해하려다 누설되어 지방에 유배되었다가 1371년 신돈을 정릉(正陵) 참배길에 유인하여 압송⦁처형한 후 풀려났으며, 공민왕 말년(1374) 서북면(평안도, 황해도) 도원수가 되시었고 公은 삼사좌사(三司左使로 양광도상원수(陽廣道上元帥)가 되어 그 도의 병력을 이끌고 최영 등과 함께 탐라를 평정하였다. 우왕 3년(1377) 왜구가 강화를 침공하자 최영을 육도도통사(六道都統使)로 하고 公은 동강도원수(東江都元帥)를 맡아 격퇴하고 또 왜구가 해주 땅으로 황해도와 평안도에 재침함에 출정하여 격퇴하였다 한다.
  배위는 정부인(貞夫人) 무안 박씨이며 묘소는 전래되지 아니한다. 장자는 은(慇、漢城判尹)이고, 2자는 근(懃, 判密直) 이시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