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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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世 | 은암공(隱庵公) 휘 백(伯) (1297 - ? ) (은암공파 파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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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종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3-19 21:19 조회4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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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 상장군(上將軍)이셨던 휘 윤주(允柱)의 아드님으로 고려 25대 충렬왕 23년(1297)에 나시었으며 아호가 은암(隱庵)이시다. 관작(官爵)은 판우군(判右軍)과 종2품인 봉익대부(奉翊大夫), 총재비순위정용장군 (摠制備巡衛精勇將軍, 방위 사령관 격)을 지내셨는데 고려 말기 국운이 쇄퇴하여 밖으로는 북방 오랑케, 남 으로는 왜구의 침공이 잦고 안으로는 반란이 일어나 내우외환이 겹쳐 정치가 부패하여감에 왕에게 여러차례 국정광정(國政匡正, 국정의 잘못 따위를 바로잡아 고침)을 간청하였으나 듣지 않으시니 장차 혁명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시고 시운을 잘못 만난 한을 품으시고 벼슬을 버리고 남쪽으로 경상도 의령땅 세간리에서 두문불출하시며 은거하셨는데 시비없는 편안한 가운데 채산조수(採山釣水, 나물캐고 고기 낚음) 하시며 자연속에 묻혀 여생을 보내시며 스스로의 호를 隱庵이라 하시면서 일체의 외부 손님을 접견하지 않으신 고매(高邁)하시고 고고(孤高)하신 은둔생활을 하신 선비였다.

  묘소는 경남 의령군 부산리에 있으나 종중 의논의 준발로 1990년에 의령군 부림면 경산리에 소재한 산수대의 묘전에 단소를 마련하여 매년 고성 시조공 묘향 후 첫 일요일에 세향을 받들고 있다.
  배위는 의상군부인 서씨(宜桑郡夫人 徐氏)이며, 장자는 을손(乙孫,, 典醫少監, 호는 採詠叟), 2자는 을보(乙寶, 典法總郞), 3자는 각보(覺寶, 曹溪宗大禪), 4자는 을방(乙芳, 東宮詹事), 5자는 을현(乙賢, 호는 採薇叟) 이시다.
  경산리 산수대 묘전에 세운 고려봉익대부은암 철성이공지단비에는 후손 태식(泰植)공이 지은 비문을 세겨 민이(民彛,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함은 무궁할 만 하다고 하셨다.

      “천명이 이상하여 나라 또한 다시 상란(桑爛, 혼돈)으로 변하였다.
      아! 공의 의적(懿蹟, 훌륭했던 유적) 이 날로 멀어져가므로 이것을 두려워하며,
      그러므로 그 큰 것만 모아서 빗돌에 새겨야지 어찌 일사(逸事, 잊어버린 사실)로 하여
      고전(古傳)으로 대신하겠는가?
      슬프다, 두문동(社門洞)에 의관을 걸고 조현의 언지(言志)를 아니함은
      모두가 은(隱) 한 글자로 말미암아 빚어내어 온 것으로
      곧 절의의 병랑(炳烺)은 비록 백세로 멀지만
      그 나라의 기강을 위하고 민의의 긍식은 무궁을 다할 만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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