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세덕

일가 여러분의 가정 가정마다 웃음소리가 창밖까지 번지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선조세덕

11世 | 판서공(判書公) 휘 빈(彬)

페이지 정보

작성자 대종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3-19 21:18 조회324회 댓글0건

본문

고려말 조선초기의 문무를 겸비한 중신으로 杏村公의 손자이고 상장군(上將軍) 휘 음(蔭)의 아들로 밀직사반주(密直司班主)를 거쳐 우왕 14년(1388) 동북면부원수(東北面副元帥)로 요동정벌에 출전하고 돌아와서 이초(彛初)의 옥사(윤이와 이초가 명나라 황제에게 “이성계가 종실이 아닌 왕요를 공양왕으로 오르게 하고 명나라를 침공할 계획을 세우며 이를 반대하는 이색 등 10명을 살해하고 우현보 등 9명을 귀양보냈다는 사건)에 연루되어 안협에 유배당했으나 곧 풀려나와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가 되고 공양왕 2년(1390)에 회군공신(回軍功臣) 45명중 한사람으로 녹선(錄選) 되었다. 이태조 2년(1393) 경기도관찰사를 거쳐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에 오르고 태조 4년 한성부윤(漢城府尹)을 역임하고 정종 1년(1399) 충청도관찰사로 나가셨다.
  태종 2년(1402) 서북면도순문사(西北面都巡問使)로 나가 노숭 등과 더불어 요동에서 일어난 적의 무리를 살육하고 잔당을 압록강 너머로 몰아내어 왕으로부터 활, 말, 화살, 털옷 등을 하사받고 이어서 조사의의 반란을 진압시켜 말과 안장을 하사받고 사평부좌사(司平府左使) 겸 우군도총제(右軍都摠制)가 되고 태 종 3년 11윌 사은사(謝恩使) 겸 종계변무사(宗系辯誣使)가 되어 민무구와 같이 명나라에 다녀왔다.
  태종 4년(1404) 참찬의정부사(叅贊議政府事)가 되고 참판사평부사(叅判司平府事) 순금사만호(巡禁司萬戶)를 거쳐 태종 9년(1409) 형조판서(刑曹判書)에 오르고 이어서 호조판서(戶曹判書)로 있다가 태종 10년에, 얼마전 강사덕 조왕호 등과의 담론에서 민무구 형제의 무죄함을 말한 사실이 윤목의 옥사에서 밝혀져 왕의 노여움을 사고 장흥으로 유배되었다가 태종 15년(1415) 피형(被刑) 되었다.
  세종 7년(1425) 환관 윤봉이 우대언(右代言)인 휘 대(臺, 둔재공)와 같이 왕께 주청하여 치세(治世)의 안영함과 公의 아들이 아홉 살로 혼자 살고 있음을 들어 公의 배위를 천역(賤役)에서 풀어 줄 것을 요구하여 公의 집이 신원(伸寃, 원통 한 일을 면제함)되고 여러 가지 곡물이 하사되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