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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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世 | 상호군(上護軍) 휘 귀생(貴生)(도촌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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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종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3-19 21:12 조회4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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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군(上護軍)공의 휘는 귀생(貴生)이며 도촌공의 손자요, 시중공 휘 림의 맏아드님이시다.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광정대부 판후덕부사(匡靖大夫 判厚德府事) 겸 판선공감사상호군(判饍工監事上護軍)에 이르렀다. 가정보(嘉靖譜)에 따르면 우왕 10년(1384)에는 대언(代言) 벼슬에 오르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공양왕 때에 김저, 변안열의 옥사에 연루되었다 하여 계림으로 부처하고 집의(執義) 남재와 헌납(獻納) 함부림을 보내어 국문하고 고성으로 이배(移配)하였다. 공양왕 2년(1390)에 윤이와 이초가 공양왕의 즉위에 대해 명나라에 무고하여 옥사가 일어나니 시중공과 함께 부자가 청주옥에서 국문을 당했다. 그때의 일을 태조실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5월 순안군 왕방과 동지밀직사사 조반이 경가에서 돌아와 말하기를 “예부(禮部)에서 신 등에게 이르되  그대 나라 사람으로서 파평군 윤이와 중랑장 이초란 사람이 와서 황제께 호소해 말하되 ”고려의 이시중이 왕요를 세워 임금으로 삼았는데 요(瑤)는 종실이 아니고 곧 이시중의 인친(姻親) 입니다. 요는 이성계와 더 불어 모의하여 병마를 움직여 장차 상국(上國)을 범하려 하므로 재상 이색 등이 옳지 못하다고 하니 곧 이색, 조민수, 이림(李琳), 변안열, 권중화, 장하, 이숭인, 권근, 이종학, 이귀생(李貴生)을 잡아서 살해하려 하고 우현보, 우인열, 정지 등은 잡아서 먼 곳으로 귀양보냈는데, 그 내쫓긴 재상 등이 몰래 우리들을 보내어 천자에게 고하고 이내 친왕에게 청하여 천하의 군사를 움직여 와서 정토(征討)하게 하시오’ 한다 하면서 이에 윤이와 이초가 기록한 이색, 조민수 등의 성명을 내어 보이므로, 조반이 윤이와 대변(對辯)하기를 ’ 본국이 대국을 지성으로 섬기는데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하고 이내 윤이에게 묻기를 ‘그대는 벼슬이 봉군(封君)에 이르렀으니 나를 알 것인데?’ 하니 윤이는 깜짝 놀라면서 얼굴빛이 변하였습니다” 하였다.  이에 우현보 등은 순군옥에 내려 가두고, 이색 이림 권근 이귀생 등은 청주의 감옥에 가두고 이를 국문하게 하였다. 이 옥사는 청주의 수재로 민심이 동요하니 왕이 이조판서 조온을 보내어 여러 죄수들을 석방하여 안치하게 하였다 하며, 公의 묘가 충주 대조원 남쪽 언덕에 있다고 하는 것으로 미루어 돌아가실 때까지 충주에 유배되어 계셨던 것으로 짐작된다.
  公은 태종 14년(1414) 5월25일에 돌아가셨으며 묘는 실전되었다. 배위는 정부인(貞夫人) 청주이씨로 대제학(大提學) 이방직(李邦直)의 따님이시다.

  公의 8대손인 창주공(滄洲公, 휘 성길)의 후손 문중에서 경기도 포천군 군내면 명산리 화암하에 양위를 합설(合設)하여 단향(壇享)하고 있으며 2004년 6월에 公의 후손들이 5천여만 원을 모아 단소앞에 신도비를 건립하였으며, 성산 이경숙(李京淑)공이 지은 비문에 다음과 같은 명시(銘詩)가 새겨저 있다.

            고성이씨는 우리나라에서 명문벌족으로
            고려조와 조선조에 명현을 배출하여
            明德과 벼슬이 代를 이어 끊어지지 않았으며
            효자와 충신과 문무가 더욱 명성을 떨쳤도다
            산천의 정기를 받아 선생이 우뚝 태어나서
            선세의 아름다움을 이어 마땅히 공훈이 있었을 것이며
            여러번 요직을 거쳐 광정대부의 품계에 올랐도다.
            고려의 운명이 끝나고 국운이 기울어질 때
            간사한 무리를 물리치고 정도를 붙들며 충성을 다하여 왕을 보위하다가 
            반역의 무리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수년동안 유배되었도다.
            여러번 난리를 겪으면서 화재에 문헌을 다 잃어버렸고     
            세월 또한 오래되어 고상한 행적이 점점 민멸되어 가는데
            이 신도에 용두구부의 비석을 세우지 못하여     
            후손들이 탄식하여 경영을 도모하여     
            이에 높은 비석을 다듬어 설단 옆에 세우면서 
            銘을 새기니 자취는 드러나고 덕은 다시 밝아지며
            산천은 채색을 드러내고 초목은 향기를 품는구나
            물려준 풍도와 여운은 길이 끝이 없을 것이다, 

        李於吾東寔爲巨閥, 于麗于朝名賢輩出, 明德簪纓世不乏絶, 孝忠文武益振厥聲,
        鍾精毓氣先生挺生, 克紹先徽宜有勳功, 累遷要職陞秩匡靖, 麗運將訖國步幾傾,
        斥邪扶正盡忠衛王, 見忤逆徒流配數霜, 累經兵燹燒失杞宋, 歲且久遠漸泯高蹤,     
        惟此神道螭龜未遑, 來裔是嗟乃謀乃營, 爰伐崇石竪于壇側, 刻銘著績復明潛德,
        山川呈彩草木芬馥, 遺風餘韻永世無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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